8월에 아름다운 가게 이태원 책방에서 구입했던 http://a1211.blogspot.kr/2014/09/blog-post_8.html <소비의 사회>를 겨우겨우 다 읽었다.
책을 대충대충 읽었는데;;; 그래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줬는데 다시 꼼꼼하게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ㅠㅠ
이 책이 1970년에 나온 책인데 여전히 유효한 점이 있어서 놀랐다. 보드리야르의 통찰력에 놀랐고 자본주의 사회의 재생산의 틀은 여전하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한 예로 책을 읽다가 라디오스타(2014년 9월 17일 53분 30초~)에 봤는데 나온 라이머 씨가 헬스 트레이너 숀리 씨의 체육관 표어인 '내 몸이 옷이다 난 몸을 입는다'를 말하는 장면과 책 중의 내용이 오버랩 되었다. '소비의 가장 아름다운 대상: 육체'라는 소단원(p.208)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옛날에는 '영혼이 육체를 감싸고 있었는데', 오늘날에는 피부가 육체를 감싸고 있다. 그러나 이때 피부라는 것은 나체의 (따라서 욕망의) 범람으로서의 피부가 아니라 화려하고 아름다운 의복 및 별장으로서, 또 기호와 유행의 준거로서의 피부다(따라서 피부는 전혀 의미를 바꾸지 않고 옷을 대신할 수 있다. 연극에서 나체가 현재 어느 정도로 이용되고 있는가를 본다면 잘 알 수 있다. 그곳에서는 거짓된 성적 흥분과는 별도로 나체가 유행 의상이라는 범례에 덧붙여지는 하나의 항목이 된다.) (중략) -소비의 사회 3부 대중매체, 섹스 그리고 여가 중에서 (p.210)
또한 관심있는 놀기 혹은 여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 동안 읽었던 책들 http://a1211.blogspot.kr/2014/04/blog-post.html http://a1211.blogspot.kr/2014/05/blog-post_9654.html 이 낙관적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면 보드리야르는 약간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시선으로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란 '언어'라고 말한다. 생존의 몸부림이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마지막 장인 <현대의 소외 또는 악마와의 계약의 끝>에서 무성영화 <프라하의 학생>을 언급하는데 우리들을 악마와의 계약으로 거울의 상(像)에 존재하는 스스로에게 쫓기는 자에 비유한다. 비극적인 것은 더이상 쫓기지 않으려면 나에게 총구를 겨눠야 하는 점이다.
비극적인 현실이지만 보드리야르는 [소비의] 하얀 미사(messe blanche)를 때려부수기를 기다려보자고 말한다. 언제될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가 나오는데 책읽기 전 먼저 보면 도움이 될 듯하다. 앵베스티스망, 르시클라주와 같은 개념들이 가뜩이나 만연체로 써진 문장들에서 튀어나오면 짜증나는데 먼저 이해하고 들어가면 좋을 듯하다.
다음에 보드리야르의 다른 저작인 <사물의 체계>나 <시뮬라르크와 시뮬레이션>를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옮긴이의 말>에서 <소비의 사회>가 그나마 읽기 수월한 편이라는데 읽어야 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다. ㅠㅠ
읽으면서 데이비드 리스먼과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가 언급이 많이 되는데 대학교 레포트용으로 구입했지만 대충 읽었던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도 읽어 봐야겠다. 근데 그 때 제대로 못 읽고 책장에 모셔만 두다가 올해 초에 아름다운 가게에 책기부 했는데 다시 구입해서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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