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6일 토요일

할머니


할머니가 지난 주에 돌아가셨다.

저번 주 목요일에 엄마가 전화를 해서 알았다. 방금 휴대폰 통화기록을 보니 오후 4:31분이었다.

갑자기 멍했다.

오전에 할머니가 객혈을 하셔서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하시는 아버지를 보았는데 그렇게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곧바로 내려가시고 나와 누나는 다음 날 가기로 했다.

할머니의 영정앞에서 절하고 상주로 문상객을 맞이하고 할머니의 영정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작은 아버지의 소리없는 울음을 지켜보던 그 시간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 또 생각해본다.

지금까지 마주한 죽음을 어림한다.

다섯 살에 외할머니, 중학생때 외할아버지, 군대있었을 때 할아버지, 대학 다닐때 학과 동기와 선배의 아버님, 이후 중학교와 초등학교 시절 친구 아버님, 그리고 할머니.

이렇게 셈하다보니 점점 죽음을 대하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듯하다.

앞으로 엄마와 아버지의 죽음을 상상하면 답이 없다.

이런 고민을 이제 40대인 형님께 여쭤보니 그 분 연배에서 부모님의 죽음을 경험하는게 잦다고 한다. 한 달에 몇 번을 문상가는 경우도 있다고. 그 형님도 췌장암과 치매를 앓고 계시는 부모님의 장례식을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계신다고 한다. 괜시리 납골당같은 것들도 알아보고 계신다고. 형님 말씀이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큰 일을 겪에 되면 너무 당황할거 같아서 그런다고. 옆에서 사람들이 도와줘도 내가 다 결정하고 해야하기에 그런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다. 형님은 이제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준비하신다.

장례식장 가기 전에 길렀던 머리를 자르려고 자주 가는 미용실에 들렀다. 머리를 짧게 친다고 하니까 왜 자르냐고 물어보신다. 사실 이 분에게 가는 것은 머리를 자르는 것 이외의 고민들을 겸사겸사 털어놓는다. 이 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머리를 바리깡으로 밀고 모자만 고수하면서 살았을수도 있었기 때문에. 그 분께서는 인간이 태어난 이유가 '경험'하기 위한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신단다. 괜히 상상하지 말고 겪어보라고 말하셨다. 말은 그렇지만. 쩝.

이제 나를 '내 새끼', '내 사람'이라고 불러줄 이는 여기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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